우리들의 희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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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암관리사업이나 국가암정보센터의 지원을 통해 도움을 받으신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소식은 나눌수록 희망이 커집니다.
제목 국가암정보센터 우수상(김향화)

국가암정보센터 우수상

 

 

 

엄마는 이따금 가누기 힘든 몸을 일으켜 거울을 봅니다. 숱이 반으로 줄어버린 짧게 잘린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한때 통통했던 패인 볼을 어루만집니다. 생기 없는 눈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한숨을 쉴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긴 투병에 지쳐 포기해버리면 어쩌나하는 서늘한 생각이 가슴 한쪽에 시린 눈물로 고입니다.


 작년 12월, 위가 아프다며 동네 내과를 다녀온 엄마는 처방약을 드시면서도 통증이 없어지지 않아 밤마다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다시 병원을 찾아 초음파검사를 받았습니다. 간 쪽이 이상하다는 소견과 함께 CT를 찍게 되었습니다. 큰 병이면 10만 원이, 이상이 없으면 20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20만 원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10만 원을 내고 돌아오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가 암과의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MRI검사를 하고, 다시 ERCP를 하고, 이름조차도 낯선 검사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췌장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90%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주치의는 만약 악성종양일 경우 수술은 불가능하며, 항암을 하더라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과 함께, 서울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이미 치료를 포기한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위로는커녕 절망만을 안겨주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 쪽의 병원과 의사선생님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더 잘 알 수 있다는 황당한 대답과 함께 우리는 퇴원을 해야 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엄마는 치료를 거부하셨습니다. 검사에 검사를 반복해도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 병명, 금전적 부담과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 진통제 사용으로 한결 줄어든 고통, 이런 저런 것들이 뒤죽박죽 된 상황에서 엄마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말로 설득을 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부산에 있는 다른 대학병원을 한군데 더 가보자는 식구들의 간곡한 부탁에 엄마도 차마 그것마저 거절하지는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진료 받은 결과, 개복 후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 다시 닫을 수도 있다는 단서와 함께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술 가능성에 일견 안심이 되면서도, 일견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과 가능의 어중간한 가능성, 그 믿을 수 없는 가능성은 망설이던 엄마에게 서울 행을 결심하게 했습니다.

 서울로 와 다시 진료를 받고 현 상태로는 수술은 힘들겠다는 진단과 함께 조직검사를 위한 입원이 결정되었습니다. 입원을 기다리면서 2주가 흘렀습니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입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갈팡질팡 하던 차에, 부산에서 같이 입원을 했던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좋아라하던 아주머니였지만, 그 후 췌장암 진단을 받고 국립암센터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시간 낭비 없이 입원을 할 수 있다며, 아주머니는 우리에게도 암센터로 올 것을 권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진료예약을 위해 국립암센터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암센터도 역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1주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러 병원을 오가며 지친 어머니를 또 다시 진료를 받기위해 힘들게 하기보다는 그냥 기다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미 췌장암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여기저기서 자료를 그러모아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췌장암에 대한 지식, 양방과 한방, 민간요법과 대체요법까지 조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의사선생님들과는 충분한 대화를 할 수도 없었던 터라 정말로 궁금한 것은 제대로 물어보지도, 항상 바쁜 선생님들을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큰 병에 걸리고 보면, 당황스러운 마음에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지도 어떻게 병에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게 다가옵니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무엇보다도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대처방법, 주의사항 등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절실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얻기 위해, 긴 시간을 허비하며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펼쳐져 있지만, 정작 어떤 것이 답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비슷한 답을 수 없이 늘어놓고 그 중의 하나를 고르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환자와 그 가족들은 그저 의사선생님에게만 매달려 조마조마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집니다.

 

 암 치료란 환자와 그 가족의 의지와 협조가 가장 크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지치고 무력해진 환자와 가족들에게 그것은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다운직전의 권투선수에게 무조건 싸우라는 말과 같습니다. 희망이라는 나무는 아무런 자양분이 없이는 자라날 수 없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목마르게 찾던 해답이 바로 그 홈페이지에 있었습니다. 암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부터 세부적인 수술방법을 설명하는 동영상까지, 암 환자들의 일상생활과 식생활, 치료의 부작용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바로바로 업 데이트되는 암 관련 소식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질문과 대답,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위로도 받고, 동영상을 보며 엄마에게 세세한 설명도 해주며 어떻게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엄마에게 갑작스레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항암치료 전에는 항암치료 부작용이란 신체적인 것만이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막상 치료를 시작하고 보니 신체적인 부작용에 못지않게 정신적인 부작용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점점 지쳐가는 엄마를 위해 가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자세히 나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환자의 심리적 안정만큼이나 가족들의 심리적 안정도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항암치료 초기에 크고 작은 부작용들에 당황해하며, 일일이 의사를 찾아 문의하고, 병원이 쉬는 주말이 찾아오면 전화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맘 졸이던 생활에서 벗어나 국가암정보센터의 정보로 웬만한 일은 스스로 대처하며 비교적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4월에 항암치료를 시작해 벌써 7개월. 암 중에서 가장 치료가능성이 낮고, 설사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예후가 좋지 않다는 췌장암과의 싸움에 지지 않고 치료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국가암정보센터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간의 치료로 지금은 암 덩어리가 10%나 줄었습니다. 물론 힘든 항암치료로 몸은 점점 약해져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약이 좋아져서 먹는 항암제와 맞는 항암제를 병행해가며 치료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작용은 힘에 부칩니다. 그래도 종종 들려오는 암치료 신약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언젠가는 췌장암도 지금보다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 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이 서 있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더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언젠가 엄마가 생기 있는 눈으로 숱 많은 머리카락과 통통한 볼을 다시 어루만지며 살며시 미소 짓게 될 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힘들어도 지지 않고 암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이 싸움에 홀로 서 있다는 생각으로 절망하지 않게 끊임없는 희망의 정보를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최종 수정일 : 2011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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